검은방AU
“......그냥 기분 나쁜 꿈을 꿨어.”
응, 너무 괴롭고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웠던 꿈. 그리고 너를 의심해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괴로웠던. 그게 너무 괴로웠던 건 다시 또 내쳐질까 봐, 더 이상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될까 봐, 그래서 잠에서 깨자마자 숨을 죽이며 울었어. 일어나자마자 너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어. 근데 그거 알아? 그렇게 괴로웠던 건,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어. 우스워, 안 그래?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반대로 가장 크게 상처 입을 수 있다니. 그렇지만 어떡해. 계속 사랑하는데.
*
종종 생각했다. 너와 나는 같은 만큼 또 많이 다르다고. 또래고, 장난 끼가 있고. 그렇게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또 그만큼 많이도 달랐다. 그리고 그건 사소한 행동 속에서도 드러났다. 상냥한 금빛 물감을 풀어놓은 것 마냥 밝고 따듯한 금색과 솔직함을 머금은 하늘색 눈동자. 사랑받고 자란 사람처럼 잘 웃고 또 그만큼 솔직했던 너. 그리고 반대로 처음부터 선을 그은 채 사람을 대하고 어른인 척 행동했던 나하고.
험하디 험한 과거사에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지만 그래도 이제 막 마음을 열어가던 터에 소중한 사람이 하나 둘 씩 죽고 다치고 의심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전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막 사는 게 나았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했다. 둘째 날 저녁이던가. 하늘에는 검은 비단에 각기 다른 채도의 금색 실이 반짝이며 수를 놓고 회색 물감이 거칠게 붓 터치에 꾸물꾸물 되살아나던 어느 날.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까. 육체적으로라면 몰라도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 일은 없었겠지.
그래서 불안했다. 너랑 있으면 행복한 동시에 불안해. 너무 소중하고 아껴서 혹시 언젠가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 가버리진 않을까, 가장 싫은 부분을 알고도 계속 너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불안감이 이런 꿈에서 드러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그렇지만 껴안은 온기에서 느꼈다. 나는 절대 카에데를 포기할 수 없는걸. 처음부터 몰랐더라면 모를까, 이미 알고 나서는, 좋아하게 되고 나서는, 그렇게. 전혀 다른 기본바탕이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은 같았고 그래서 같이 있을 수 있다. 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야. 너랑 같은 마음이어서 기뻤단 그 말만큼 솔직한 적은 없었다고.
나와 너는 달랐으나 같았고, 그렇기에 여기에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