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 기반
어느 날 갑자기 꽃향기에 파묻혀 깨어난다면 그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코끝을 간질거리는 꽃향기와 눈앞을 채우는 꽃. 독한 꽃내음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그리고 그것은 내가 고열 속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본 광경이기도 했다.
꽃 좋아해?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위해 일부러 꽃을 사본 적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몰랐다. 아니, 아무리 많이 꽃을 받아본 사람이라도 이건 알지 못하겠지.
눈앞을 채운 꽃은 환각일까. 이런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환절기도 다 지나가고 때를 놓친 열병에 나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몰라. 감기라곤 거의 걸려본 적 없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진짜였다. 예전 같았다면 거짓말이겠거니 하고 넘길 일이었는데, 그러나 옅은 노랑색 꽃잎을 본 순간 떠오르는 그리움의 주역이여.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정말로 절실히 바랐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더라니. 목이 따가웠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아, 전데요, 감기에 걸려서 오늘 일은 못 나갈 것 같아요.
말을 하는 내내 몇 차례나 기침을 삼켰다. 그 중 일부는 콜록대는 소리와 쉰 목소리가 듣기 싫은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그는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꽃들을 방치했고 전화를 끝냈을 땐 평범한 꽃병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는, 잠시 잔해들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목이 따갑다. 일어설 수 있을까, 잠시 머뭇거렸으나 꼼짝 못할 것 같긴 했어도 평소 체력은 어디 가진 않는 것인지 오랜 시도 끝에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흩어진 꽃과 이파리를 모으고 창문을 닫고 어지러이 놓여있는 알약 중 해열제를 골라 삼켰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손잡이가 없는 컵을 골라 꽃을 꽃아 놓았다. 침대 옆 책상에 놓인 꽃들은 조금 어두운 방 안에 들여놓자 더 환해 보였다. 처음에는 버릴까, 생각하기도 한 꽃이었는데. 그런데 정작 꽃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버리기를 망설였다. 변덕이라고 치부하면서 나는 깊이 생각하는 걸 포기했다. 차라리 그게 더 마음 편하지 않아? 인정은 하는데 그냥 좋아하기만 하는 거야.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내겐 이정도가 적당했다. 따가운 눈가를 쓸고 몸을 침대에 뉘이자 피곤하긴 했는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정신없이 앓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작은 식물 사전을 하나 사는 것이었다. 사전은 다른 것들에 비해 작았지만 꽃 사진이나 설명이 자세한 것으로 골랐다. 히나타는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테이블 위에 얹어놓은 꽃 한 송이와 똑 같은 것을 찾으려 애썼다. 노란색의 꽃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고 그나마 다행인 일이라면 알파벳 카테고리 중 이른 편에 속하는 D열에서 일치하는 것을 골라냈다.
「데이지
유럽 원산이다. 수염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뿌리에서 나오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주걱 모양이며 밑쪽이 밑으로 흘러 잎자루 윗부분의 날개로 된다. 잎의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약간 톱니가 있다.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피며 뿌리에서 꽃자루가 나오는데 길이 6∼9cm이다. 그 끝에 1개의 두화(頭花)가 달리며 밤에는 오므라든다. 두화는 설상화가 1줄인 것부터 전체가 설상화로 된 것 등 변종에 따라 다양하다. 유럽에서는 잎을 식용한다. 종자로 번식시키고 가을이나 봄에 관상화로 널리 심는다. 한국의 주문진·속초·강릉 일대의 동해안에서도 볼 수 있다. 꽃말은 '순수‘이다.」
나는 빳빳한 페이지를 움켜쥐다 손에 힘을 풀고 마른 침을 삼켰다. 피곤했다. 반나절까지는 아니어도 아침을 마실 걸로 때우고 뚫어져라 보기만 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거였나. 노란색 꽃의 이름은 데이지. 이름도, 맨 마지막 줄에 적힌 꽃말하나 마저 너랑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고민하다 그 페이지만 따로 찢어서 서랍 속에 넣어놓고 책은 책장 위에 끼워놓았다. 몇 권 채 있지도 않은 책상 위에 놓인 사전은 조금 휑해 보였다. 사실 큼지막한 꽃 그림이 그려진 사전 자체가 어색해 보였지만 그 점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그리고 내가 말했던 후회의 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 날은 새벽이라기엔 뭣하고 늦은 밤이라기에도 어색한, 해도 뜨지 않았던 겨울의 새벽이었다.
나는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서 막상 너를 포기하게 되거나 혹은, 순간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전부 네게 말하고 싶은 때가 찾아오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것은 결정을 유예한 대가였다. 일찌감치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내 불확실함의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래도 있잖아, 묵직한 소설책 끄트머리에 들었던 말처럼, 뿌리 없이 이끼가 자라듯 사랑받지 못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그말을 조금쯤 믿어봐도 괜찮지 않냐는 생각을 했다. 그래, 처음부터 깊이 생각하는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오로지 속에 담은 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걸 거야.
나는 태연하게 웃어 보이려 했다.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믿기로 했다.
“--------”
좋아해. 자리엔 있지도 않은 붉은 장미향에 속까지 데일 듯이 타오르는 것 같다. 내가 전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최대였다. 영화 같은 프로포즈도 달콤한 사랑한다는 말도 내겐 너무 어려웠다. 부족할 따름이지만 그냥 좋아한다는 그 말이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전부였다. 나머지는 꽃이 말하던지, 아니면 전해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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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단간하구 쵸우하키 하려 그랬는데 단간은 아직 열씨미 모니터링 중이라 이거 먼저 해써... 근데 쵸우하키는 짝사랑으로 끝나야 될 것 같아서 내 상상력의 한계가 걸려찌(코쓱 그래서 하나하키 썼엉... 꽃토도 죠아해..? 담엔 카에데 나오는 거 써야지